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쓰자카 다이스케 (문단 편집) === 프로 입단 전 === [[파일:마쓰자카고교.jpg]] 요코하마 고교 시절 고시엔에서 투구하는 모습. 요코하마 고교 시절에는 엄청난 초고교급 유망주로 최고 152km/h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, 커브,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순수 실력과 더불어 고시엔에서 역대급 활약을 하며 '''[[헤이세이]]의 괴물(平成の怪物)'''이라는 칭호와 함께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.[* 이후, [[레이와]]의 괴물이라는 칭호는 [[사사키 로키]]가 갖게 되는데, 사사키 역시 초고교급 유망주로 주목받은 바 있다.] 특히 1998년 [[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|고시엔]] 야구대회 준준결승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야구 명문인 [[오사카부]]의 [[PL학원고등학교]]를 상대로 '''연장 17회까지 무려 250개의 공을 뿌리면서''' 완투승을 기록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.[* [[여담]]으로 이 명승부에서 마쓰자카와 맞대결해 패한 PL학원의 투수 카미시게 사토시는 팔꿈치 부상으로 프로 진출을 포기한 후 2003년 [[닛폰 테레비]]에 입사해 현재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중이다.] 거기다 '''바로 다음날'''인 메이토쿠기쥬쿠 고교와의 준결승전에서 구원등판[*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을 때도 덕아웃에서 쉬고 있었던 게 아니라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서 풀 이닝 소화중이었다!], 역전승의 발판이 되어 팀을 결승으로 이끌고 이후 이어지는 결승전에서 선발등판해 59년만에 결승전에서 '''[[노히트 노런]]'''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. 더욱 놀라운 건 이게 불과 사흘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.[* 참고로 고시엔 대회는 전부 낮 경기로 치러진다. 1년 중 가장 더운 8월 초중순에 뙤약볕 밑에서 경기를 한다는 얘기다. 특히 8강전은 하루에 4경기를 다 치러버리기 때문에 아침 8시부터 경기를 시작하는데, 요코하마 고교와 PL학원의 경기는 그 중에서도 가장 더운 세번째 경기인 낮1시 경기였다!] 그 결과 [[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|고시엔]] 춘계·하계 대회에서 연패를 달성해 팀의 우승에 공헌했고 우리나라의 전국체전에 해당하는 국민체전에서도 팀을 정상으로 이끌며 한 해 3연패를 달성했다. 1997년 추계 현 대회 예선부터 다음해 제53회 국민 체육 대회 결승까지 공식 경기에서 44연승을 기록하는 대기록을 세웠다. 고교 시절의 이런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그해 프로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[[세이부 라이온즈]], [[요코하마 베이스타즈]], [[닛폰햄 파이터즈]]가 영입경합을 벌인 끝에 교섭권을 따낸 [[세이부 라이온즈]]의 지명을 받고 1순위로 [[세이부 라이온즈]]에 입단했다. 여기에 한가지 비화가 있는데, 마쓰자카 본인은 요코하마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[[요코하마 베이스타즈]]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. 지명한 세이부가 마쓰자카가 염두에 두고 있던 팀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이부 구단은 모기업의 세이부그룹 계열사에 요코하마 고등학교 학생들을 취업시키겠다는 조건을 마쓰자카에게 걸었고, 이를 들은 마쓰자카는 결국 수락했다. * 이때 마쓰자카 지명에서 미끄러진 [[요코하마 베이스타즈]]는 거포 3루수 [[후루키 카츠아키]]를 1순위로 지명하게 되는데, 이 선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초등학교 때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구단은 '타이요(요코하마의 전신)'라고 썼었다.(...) 이 선수는 [[무라타 슈이치]], [[우치카와 세이이치]] 등과 함께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[[공갈포|거포 유망주로 기대받았으나, 컨택, 선구안, 수비가 죄다 막장이어서]] 결국 프로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는데 커리어하이가 [[2003년]]의 '''타율 .208 / 22홈런 / 37타점'''이었으니 말 다했다.(...) 마찬가지로 마쓰자카 지명에서 미끄리진 [[닛폰햄 파이터즈]]는 당시 고교 제일의 포수 중 1명으로 칭송받던 사네마츠 카즈나리를 1순위로 지명한다. 하지만 이쪽도 수비는 그럭저럭 제몫을 했으나, 타격이 '''통산 타율 1할(...)'''을 찍을 정도의 개막장이었는지라 후루키와 마찬가지로 닛폰햄에서 제대로 주전포수 자리를 잡지 못했고, 결국 경쟁에서 밀려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로 이적했으나 거기서도 백업, 2군 수준으로만 머무르다 2017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. 2018년 육성코치 겸 포수로 닛폰햄 복귀 예정. 동기들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통산성적을 갖고 있지만 [[포수]]인 점 때문인지 아직까지도 가늘게나마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